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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運命)을 바꾼 쑥뜸 / 김윤세 (주)인산가 대표이사2002/05/28
안내원http://leelight.com
제목 없음 ◐ 첫경험 - 피부병

장충동에 살 때니까 아마 대략 16년 전쯤의 일로 기억된다. 그때 동생(윤수)과 함께 지독한 피부병에 걸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온통 군데군데 물집이 잡히고 그 속에 누런 고름까지 보이는 것이었다.

모양이 흉한 것은 둘째고 겉으로, 속으로 어찌나 가려운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인근 약국에서 피부연고도 사다 바르고 내복약도 복용하였으나 병세는 악화일로였다.

본디 자식들이 어디 아프다고 하여도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버지(仁山)께서 비로서 약간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도 오랫동안 고생하니까 아마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낫지 않으면 뜨는 길 밖에 없다”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지만 듣는 나는 벌써부터 쑥과 친해(?) 있었으므로 쑥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장충동으로 이사 오기 3년 전쯤 종로구 수송동 혈액은행 건물에 살 때 중풍으로 말을 못하고 몸의 반쪽이 마비되어 고생하는 사람들과 고질 당뇨환자들이 쑥뜸을 뜨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던 것이다.

70년대 초반 무렵 제법 널찍한 장소의 여기저기 누워 쑥뜸으로 불치병을 고치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또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 더러 내손으로 떠준 일도 있었다.

새 알만한 뜸쑥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면 사람들은 몸이 오그라들기라도 하는 듯 움찔하면서 이를 악물거나 주먹을 꼭 쥐고 바르르 떨기도 하는 등 매우 고통스러워하였다.

아버지는 나를 앉으라고 한 다음 피부병으로 인해 가장 심하게 곪아 있는 왼쪽 장딴지의 곪은 당처에 쑥을 뭉쳐 올려놓고 불을 붙인다. 쌀알만 한 것 두어 장 뜨더니 콩알 크기로 커지고 이내 어른의 엄지만한 것으로 바뀌었다.

한 장, 한 장 탈 때마다 이제나 저제나 그만 뜨기를 바라지만 쉴 틈 없이 사정없이 뜨셨다. 당시 몇 장을 떴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세군데 각 15장정도로 기억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이를 사려 물 정도의 고통도 세월의 물길 따라 이제는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졌다.

◐ 두 번째 - 몽우리

74년 7월 14일, 서울을 떠나 함양으로 이사가 3년여를 사는 동안 또 한 차례 쑥뜸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왼쪽 겨드랑이에 몽우리 하나가 생겨 독기를 발하는데 몹시 아프고 고통스러워 참다가 결국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당장 준비하고 누우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수술을 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질환에는 볼 것 없이 쑥뜸을 처방하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고 선생님, 그걸 어떻게 합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건 못하겠습니다.”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러나 나는 그럴 처지도 못되고 아니 아버지의 신비에 가까운 의료술을 신뢰하기에 순순히 누웠다. 그런데 이날은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런 일이라 고통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버지는 왼쪽 팔을 들고 누운 나의 겨드랑털을 가위로 자르고 바로 시작하셨다. 나는 가끔 아버지께서 스스로 뜸뜨는 광경을 보았는데

◐ 아버님의 뜸

약간의 두려움, 혹은 거리낌이라도 있으시련만 일체 내색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시는 건지 못 느끼시는 건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나도 한 번 그렇게 태연스레 참아봐야지’ 마음먹고 일부러 천장을 응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려 하지만 마음 뿐, 우선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곧 드러나고 만다. 표 안 내고 참으려니 저절로 어금니를 꽉 물게 되는데 그래 끝나면 이가 몹시 아프다.

처음에는 주먹을 꼭 쥐고 전신에 힘을 주고 버텨보지만 고통이 극에 달하면 포기하고 자연에 내 맡기는 게 더 낫다는 걸 알게 된다. 온 몸의 힘을 빼버리면 지극히 자연스러움에 합일(合 一 )될 때 뜨거움의 고통은 더 이상 악랄하게 괴롭히지 않고

기본적 고통만 남아 견딜 만한 괴로움을 준다. 화탄지옥이 그러할까, 그때 2시간여의 뜸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불 속의 긴긴 고행(苦行)의 여정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고통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5년 후인 1995년 가을에 알게 된다.      

◐ 세 번째 - 도중하차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물러갈 무렵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심상치가 않다.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뜸을 뜨려무나” 지극히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도봉구 수유동에 살 때였는데 우주(宇宙)와 신약(神藥)이라는 아버지의 저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때이다.

아버지의 처방대로 중완(中脘)에 뜸을 뜨기 시작했다. 말이 그렇지 막상 5분짜리 뜸을 시작하니 잔등과 이마와 콧등에 생 땀이 솟는 것이었다. 뜸을 시작한지 몇 시간이나 됐을까 워낙 지독한 뜸의 고통 때문인지 심상치 않게 몸을 엄습해 오던 배의 통증은 씻은 듯 사라졌다.

10여 일 진행하던 뜸을 도중하차해야 하는 사건이 생긴다. 80년 5월부터 ‘수산(水産)신보라는 전문지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 조선일보사 월간 ’山‘지 주간으로 근무하던 백순기 선생과 가끔 만나고 있었다.

퇴근 무렵 백선생의 전화가 “지금 곧 택시를 타고 기자 촌 입구 은성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한다. 나와서 기다리던 선생은 손수 택시비를 치러주시고(사실 그때 택시비가 없었다) 독일산 백포도주가 생겼는데 나와 마시고 싶어 불렀다는 것이다.

나는 술이라고 하면 주종 불문하고(요즘은 술의 품질을 살피지만) 즐기는 편이었으므로 여간해서는 사양하지 않는데, 그래서 고생고생하며 쑥뜸을 뜨다가 ‘쑥뜸 시 금기사항 세 번째 항목 안’에 드는 술을 먹게 될 상황이 된 것이다.

망설이다가 왠지 쑥뜸에 대해 구구한 설명을 하기가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말았다. 백 선생은 내가 평소 존경하고 또 기자로서 자주 가르침을 받기도 하는 그런 관계였다.

뜸을 뜨는 도중이라 지칠 대로 지친 데다 빈속에 몇 잔을 연거푸 들이키니 기분은 날아갈 듯 좋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없는 걸로 미루어 꽤 많이 마셨고 혹 결례가 없었는지 걱정도 되었다. 결국

도중하차의 쓴 잔이 되어 다음 날 고약을 붙이고 말았다. 이듬해 불교신문사 기자로 일할 때, 여름휴가가 시작될 무렵의 월급날 그러니까 81년 7월 25일 출근을 서두르는데 갑자기 심상치 않은 고통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 네 번째 - 복통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배를 움켜쥐고 앉아 한동안 고통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으나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며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간다. 참다 참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5백m 쯤 떨어진 아버지께 가니 아버지는 또

“너는 뜸을 뜨지 않으면 옳게 못 산다”며 누우라고 하셨다. 쑥뜸의 고행이 또 시작된 것이다. 1분짜리로 시작하여 숨 돌릴 겨를 없이 배 위에 올려지는 뜸쑥의 불에서 솟아오르던 연기가 끝날 때마다 상복부의 통증은 극에 달하였다.

처음은 뜸자리 부위가 뜨겁고 아프지만 5분 이상으로 가면 상복부 전체를 불칼로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다. 뱃속의 통증과 뜸불의 고통이 만나자 그 큰 고통이란 필설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고

생지옥 같은 불길의 고통 속에서 숨조차 멎을 듯한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고통의 시작은 기억되지만 막상 고통이 극에 달하는 절정의 순간은 무념(無念) 무아(無我)의 정신상태를 강요당한다. 천정으로 오르는 쑥연기를 보며 불쑥 다가드는 고통을 잊으려 잠시 수를 헤아린다.

하나 둘 셋 --스물 --서른 --마흔 --예순 --일흔 --- 숫자도 수를 헤아리는 주체도, 생각도 일시에 모두 고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다시, 이 세상 고통을 구원하는 구고(救苦)의 화신(化身)이라 일컫는 관음(觀音)을 생각하며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속으로 외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대개 이쯤에서 관음도, 반야심경 경문도, 염송하는 주체도 또다시 고통 속으로 삽시에 사라져버리고 파도처럼 고통이 밀려나가면 그제야 사라졌던 존재가 돌아와 조각난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 마저 외워 마치곤 한다.

고통은 피할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거대한 고통이라 하여도 감연히 나아가 맞아들여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면 고통은 성난 파도가 평정을 되찾듯 그렇게 서서히 본디의 뿌리 없는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가 고통을 맞아들이기가 쉬운 일이라 하겠는가. 고통은 강보의 어린 아이로부터 10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싫어하고 피하려 하는 법이다. 인간의 이러한 속성으로 하여 결국 그 고통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 게 아닐까?

옛 선사들이 “백 척 낚싯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라(百尺竿頭 進一步)”라 하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머리를 부딪쳐 보라.”고 한 것은 참으로 묘미 있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경지의 정신세계에 도달하였을 때 인간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요, 그렇지 못하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리도 모질게 나를 괴롭히던 뱃속의 통증과 쑥불의 고통이, 고통에 지쳐 있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되자 졸음이 쏟아져 온다. 아버지께서 뜸을 끝내시고 내게 한잠 자라고 하여 지친 끝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타고난 명(命)

“너는 너의 운명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명리학을 배우고도 짐작을 못하느냐. 뜸을 뜨지 않으면 안돼.” 언젠가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저는 오늘을 성실하고 바르게살기 위해 노력할 뿐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선 일체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가끔씩 떠오르는 아버님의 가르침은 풀 수 없는 하나의 화두(話頭)로 뇌리 속을 맴돌았다. 죽을 운명이라면 운명을 알려고 노력하는 그 시간에 보다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찾아 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요, 변함없는 지론이다.

아버님께서 명리학을 공부하라고 해서 한때 명리정종(命理正宗) 연해자평(淵海子評) 복서정종(卜筮正宗) 등의 술서를 원전으로 탐독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운명에 대하여 알려고 애쓴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덮은 뒤로는 일체 다시 보지 않았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도록 오늘을 성실하게 살자’는 게 나의 지론이고 보면 그러한 방서(方書)들의 술수를 배운다는 것은 다만 시간낭비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술서를 덮은 뒤로는 주역(周易) 도덕경(道德經)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 등의 경전을 보며 소일하였다.

81년에 간행된 아버지의 저서 구세신방(救世神方)의 개정 증보판을 제작하기 위하여 당시 읍내 하동 586-3 아버님 거처를 오가며 틈틈이 원고정리를 하기도 하였다. 86년 6월 출간된 神藥(신약)의 앞부분에 수록된 죽염 오핵단 삼보주사, 세 章(장)은 82년부터 83년 1월 15일 함양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의 1년 남짓한 기간동안에 정리된 부분이다.

◐ 다섯 번째 - 부작용의 고통

81년 12월 31일 우리 집 식구들은 모조리 함양으로 다시 이사했다. 82년 봄. 함양에서 노용신 양기탁 씨와 셋이서 눈 덮인 지리산 등정을 마치고 함양읍내 상동 154-3 골방에서 쑥뜸을 시작하였다.

셋이서 나란히 누우면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비좁은 방에 쑥 연기 자욱하게 피우며 열심히들 떴다. 하루 평균 5분 이상짜리 9장~15장 정도를 20~30일 가량씩 뜬 것으로 기억된다. 뜸을 마치고 고약을 붙여 상처가 거의 아물어 갈 무렵

집에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고 상당히 불쾌해 있던 차에 마침 몹시 시장기를 느껴 아이 분유를 약간 떠먹은 게 화근이 되었다. 잠시 후 예의 공포의 고통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온몸의 힘이 쏙 빠지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으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마침 여동생이 왔다가 나를 부축하여 읍내 병원으로 가는데 5분 정도면 가는 곳이 너무나 멀게 느껴지고 걸을 수가 없었다. 지나던 교통순찰차의 도움으로 도착하여 진통제를 연거푸 맞아도 통증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방법이 없다는 병원 측의 이야기에 병원을 나와 시장 안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서 복용했으나 역시 차도가 없었다. 진통제는 일체 반응이 없고 통증은 점점 심해만 간다. ‘혹시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죽는 거야 괜찮지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죽으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뜸을 뜨지 않으면 너는 옳게 못 사느니라”하신 아버님 말씀이 떠올랐다. 하동의 아버지 거처로 찾아가 “아버지, 너무도 아파 죽을 것 같습니다” 말하고

배를 움켜쥔 채 방바닥에 엎드려버렸다. 여전히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바로 누워라” 아버지는 큼직한 중완침을 침통에서 꺼내더니 막 아물기 시작한 중완혈을 찔렀다. 뜸자리가 딱딱하여 침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뜸자리 바깥의 살에서 중완혈 중심 쪽으로 비스듬히 찌른다. 중완혈에 침은 들어갔으나 통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서랍 속에서 조그만 봉투를 꺼내더니 콩알만 한 크기의 까만 물질을 주신다.

“이건 아편인데 이것으로도 진통이 멎지 않으면 뜨는 수밖에 없다.” 아편 역시 조금치의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누우라고 하신 다음 아버님 손수 중완에 뜸장을 올려놓으셨다.

뱃속의 통증과 쑥불의 고통이 다시금 나의 내부에서 사활(死活)을 건 일전(一戰)을 시작하였다. 뜨거운 불칼로 상복부 전체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계속한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한 끈질기게 괴롭히다가 마음을 비우고 그것을 자연스레 수용하면 비로소 떠나가기도 하는 알 수 없는 감각의 하나.

극심한 고통을 육체가 겪을 때마다 고통을 인내하는 정신은 성숙의 도를 더해 간다. 생명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고통은 누구라도 피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결코 외면해서도 안 되고 외면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가치와 숙명을 지닌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어 시간 뒤 나는 ‘쌍끌이’고통에 짓눌려 지칠 대로 지쳤다. 마치 두 마리의 호랑이가 한 판 싸움을 벌이다 둘 다 지치듯 병고(病苦)의 통증과 쑥불의 고통은 극한대결 끝에 다같이 소멸하고 말았다.

다섯 자 남짓한 육신 하나를 이끌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내 주위에 있는 식구들 또한 내가 고통을 치를 때마다 마음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83년 1월 16일. 가족을 함양에 둔 채 홀로 서울에 올라와 모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잠자리가 마땅치 않아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두어 달 남짓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였다. 두어 달 후 화곡동에 단칸방을 빌어 아내와 큰아이(男 4살) 작은아이(女 2살)도 불러 올렸다.

출판사에서 고승(高僧)들의 법문카세트를 취재하여 이를 제작하는 두 달 가량의 기간동안 시간에 쫓겨 방을 지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작업을 모두 마무리 짓고 5월 초 연희동에 있는 농수산신보의 편집기자로 직업을 바꾸어 일했다.

병약한 몸에 깡다구 하나, 사람들은 가끔 내가 아무 힘도 없으면서, 또 가진 것도 없는 빈털터리이면서 웬 자존심은 그리 강하고 배짱이 그렇게 좋으냐고 농담 비슷한 힐난을 하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으로 육신을 지탱한다 하여도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오후 9시, 10시까지 쉬지 않고 폭주하는 신문편집업무에다 첨예한 인간관계의 대립(나의 성격이 모난 탓)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마침내

◐ 여섯 번째 - 응급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일하던 도중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리고 거대한 고통이, 마치 대지 위로 밀려오는 안개처럼 멀리서 서서히 다가와 나를 점령한다.

‘아, 또 나는 숙명처럼 이 괴로움과 만나는 구나. 도대체 이것은 언제까지 날 괴롭힐 것인지…“ 오후 3시쯤이었다. 배를 움켜쥐고 3층 사무실을 내려와 택시를 잡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으나 통증의 고통으로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통증이 너무 심하여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고통으로 초조한데 병원의 의사, 간호사는 천하태평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운데 딱딱한 나무의자에 기다리기 얼마쯤일까.

팔에서 피를 빼 검사실로 가져간다. 잠시 후 젊은 의사가 다가와 옆의 간호사에게 “이 환자야?‘ ”예“ 나를 보면서 ”보세요, 아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가도록 방치했습니까? 빨리 수술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병인데요?“

우선 통증만 다소 진정시켜주면 좋겠다 싶어 무슨 병이냐고 물은 것이다. “급성복막염인데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곧 수술하지 않으면 터져서 죽게 됩니다. 시간이 급하니 빨리 결정을 해 주십시오”

간호사에게 내가 생각할 시간적 여유는 얼마나 있냐고 물었다. 조금 있으면 터지기 때문에 5분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어섰다. ‘내가 길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하에 둘도 없는 명의(名醫)의 자식이 되어 그분이 가장 비판하는 수술을 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수술을 참으로 싫어하신다. 수술로 치료하는 거의 모든 질병(특수한 예 몇 가지를 제외하고)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술요법이 어떤 질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못된다는 점 때문이다.

“아니 그런 몸으로 어디를 가시려 합니까?” 의사와 간호사의 눈이 커졌다. “예, 괜찮아요. 수술은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다. 늘 걸어 다니는 길인데 괴로운 몸으로 가려니 참으로 먼 고행 길로 여겨졌다.

약국에서 세 번 먹을 진통제를 지어 달라하여 한 입에 털어 넣고도 고통에 압도되어 그야말로 무아(無我)의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고 아파서 돌아온 걸 알았다. 아이들도 아직 해가 훤한 시간에 돌아온 아빠를 반가워하면서도 창백한 얼굴에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는 달려들어 안기지 않는다.

밤 12시 전에 귀가 한 적이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뿐 독하게 엄습하는 복부의 통증 때문에 천정가구 같은 사물들이 노오랗게 보인다. 주인집 전화를 빌어 함양의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게 하니 잠시 외출 중이시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방바닥에 엎드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엄습하는 통증의 횡포를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아버님의 전화라고 하여 마루로 나가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죽을라나 봅니다.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요. 수술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수술이라도 해 볼까요?”
“그놈, 쓸 데 없는 소리를 다 하는구나. 네 병은 수술로 나을 병이 아니다. 진통제나 더 사다 먹고 기다리려무나. 내 곧 서울로 간다.”

이 때가 오후 6시. 함양에서 당장 출발하여 오신다 해도 남원서 밤 11시 반 기차를 타야 하므로 이튿날 새벽 6시는 되어야 집에 당도할 수 있다. 진통제를 몇 번 먹을 분량을 사다 먹어도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은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마루에서 방안의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고통이 심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아(自我)뿐이다. 부모처자 그 누구도 고통을 덜어 줄 방법이 없는 것. 나의 고통은 나의 것이고 그것은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숨이 넘어갈 듯한 통증이 계속된다. 5분을 견디기도 힘든 데 어떻게 12시간을 기다린단 말인가. 그러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인 아버지를 기다리자. 아버지께서 오실 때까지만 참아보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가줄까. 역사적으로 고난을 극복하며 세상에 큰일을 하였던 사람들을 생각해 볼까. 영웅들의 이름과 모습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할뿐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그 사람들의 일화를 되새길 수가 없다. 오로지

고통만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촌은 저 지독한 악마의 폭정에 시달리는 암흑기를 겪고 있다. 성군(聖君)의 출현은 언제쯤일까? 이토록 괴로움이 심할 바엔 차라리 기절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12시간 동안 단 1초도 잠들지도 못하고 동이 틀 때 까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얘는 자느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몽롱한 가운데 문밖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방에 들어오시자마자 바로 눕게 하고 침으로 몇 군데 찌르신다. 복부를 꾹꾹 눌러보시더니 중완 · 단전과 아픈 당처 두 곳에 뜸쑥을 올려놓고 불을 붙이신다.

생지옥 같은 불속의 고행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워낙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던 터라 쑥불의 고통은 오히려 참을 만 하다. 복부통증은 절망을 담은 고통이었고 쑥불의 고통은 그 속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괴물처럼 다가와 그리도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새벽안개 걷히듯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한다. 고통과 고통이 맞부딪쳐 소멸하는 순간이다.

“뜸을 뜨지 않으면 옳게 못산다고 했는데 너는 아직도 못 알아듣는 구나. 너는 뜸을 뜨지 않으면 안돼.” 아버지의 말뜻은 평소 봄가을에 중완, 단전에 5분짜리 쑥뜸을 거르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박봉에 잠잘 시간조차 넉넉지 않은 서울의 샐러리맨이 쑥뜸을 거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더구나 신문사 기자는 날마다 술에 찌들어 살게 하는 환경이라 쑥뜸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알겠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뜸을 끝내고 가시며 화제를 써주셨다. 가미반총산(加味蟠蔥散 )이었다. 이것을 지어 한 일주일 복용하라고 하시며 차후에도 아프면 이 화제대로 지어다 먹으라고 일러주셨다. 그 화제는 지금도 수첩에 적혀있다. 이렇게 하여

또 한번의 위기를 넘겼다. 그 얼마 뒤에 복통의 기미가 보여 화제대로 약을 지어먹고 진정된 적이 있다. 한달 쯤 후에 농수산신보에서 불교신문사로 직장을 옮겨갔다.

당시 불교계는 신흥사 살인사건의 여파로 황진경 총무원장이 물러나는 등 몹시 혼란 속에 빠져있을 때였다. 하필 그 어려운 시기에 옛 선배 동료들의 끈질긴 권유로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이다. 허나 조계사로 출근하자마자 동료들과 헤어져 봉은사로 근무지가 옮겨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간적 괴로움을 맛봐야했다. 이 무렵

또 한 차례의 고비가 찾아들었다. 복부의 통증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즉시 가미반총산을 지어다 복용하였다. 마침 추석이어서 함양에 내려가야 했으나 포기하고 사당동 형님 댁에서 홀로 고통 속의 명절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도 괴로운 삶을 계속 살아야하는가.’ 하는 삶에의 회의가 일었다. 아프다고 아버지께 괴로움을 끼쳐드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벌써 몇 번째인가? 다음에도 이런 고통이 온다면 차라리 세상을 하직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84년은 나에게 정신적 괴로움이 가장 컸던 해이다. 묘하게도 육체적 괴로움은 면했으나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살면서 많은 번민 속에 보냈던 세월이었다.

◐ 일곱 번째 - 전환점

85년의 가을은 나의 운명이 바뀐 생애의 전환점이었다. 이 무렵 신문사의 가을 휴가기간 동안 박원배기자와 함께 백양사를 다녀왔는데 그때 절 밑 동네가게에서 맥주를 마신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백양사에서 하룻밤 보내고 오후 늦게 서울 등촌동 집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부의 통증이 서서히 시작되는 게 아닌가. 오후 9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그날따라 일찍 잠이 들었다.

경험으로 미루어 조금만 더 지나면 내 마음 대로 육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아, 어찌해야 할 것인가. 통증이 와락 밀려와 그 통증에 짓눌려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떻게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통증과 싸우고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때 묘하게도 여섯 살 큰아이와 네 살 작은 아이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오랜 이별기간동안 아빠를 보고파하다가 함께 지내게 되어 더 없이 기쁜 표정으로 뛰놀던 아이들이 곤히 잠든 모습은 평화, 그것이었다.

이때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쑥뜸’ 그렇다 죽을 결심이라면 쑥뜸으로 그 거대한 괴물 같은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보는 것이다. 부랴부랴 장롱 속의 뜸쑥을 꺼내 꾹꾹 뭉쳐 중완, 단전에 올려놓고 뜨기 시작하였다.

깊이 잠든 식구들을 깨울세라 조용히 혼자 누워 계속 불을 붙였다. 방안은 쑥연기 자욱하고 정적 속에 성냥 긋는 소리와 연기로 인해 아이들이 가끔 콜록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이튿날

출근하기 위해 아침상을 받아 식사를 하는 나를 보다가 아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한다. 언제나 두어 숟갈 깔짝깔짝하다 마는 사람이 웬일로 한 그릇 밥을 맛있게 다 먹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심코 먹었지만 이날따라 밥이 매우 달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어젯밤 엄습하던 통증이 언제 물러갔는지 곰곰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어젯밤 송담(松潭)에 비바람 몹시 불더니 / 고기 잔등에 뿔 하나 나고 학은 세 번 울더라.”(昨夜松潭風雨惡 / 魚生一角鶴三聲)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느 선사가 “한 번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 어찌 심혼을 울리는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不是一番寒徹骨 / 爭得梅花摸鼻香)라고 읊었던 속마음이 공감이 간다. 이어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공(空)의 의미가 새롭게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때 참으로 신나게 뜸을 떴다. 추석이 중간에 놓여 함양에 가서도 계속 떴다. 추석날. 그 뜨거운 쑥불이 고통대신 훈훈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준다. 막내 동생(윤국)더러 떠 달라 하고는 자다 깨다하면서 새벽 4시까지 뜸을 뜨고 동생도 피곤해하기에 그만 그쳤다.

이튿날 저녁 계속하던 중 고통 없이 훈훈하기만 하던 쑥불이 갑자기 몸서리쳐지게 뜨겁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이제 그만 뜨라고 하셔서 그해 가을의 쑥뜸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부터 나의 몸에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등의 심적 변화도 찾아왔다.

몸이, 낡은 자동차를 새롭게 ‘보링’한 듯한 느낌이었고 세계관은 오늘까지도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쑥뜸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할 만한 신이(神異)한 힘이 있다고 확신한다.

85년 가을 이후 나는 ‘아버지의 위대한 지혜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78년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전세방을 월세로 옮겨 그 자금으로 神藥(신약) 책의 제작을 위해 방대한 양의 원고정리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윤우형과 동생 윤수와 나는 종로구 부암동 산날망의 허름한 나의 삯월세방에서 밤을 낮 삼아 작업을 진행하였다.

▲ 김윤세 (주) 인산가 대표이사. 2002년 5월 촬영 ▲

◐ 여덟 번째 - 인공장수법(人工長壽法)

86년 봄. 神藥(신약) 제작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신문사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여 원고정리를 하다보면 대개 밤 12시까지 작업하게 된다. 이때부터 뜸을 시작하면 새벽 1~2시쯤 끝나고 후통을 견디다 보면 보통 4시쯤 잠들게 된다. 평균수면시간 세 시간 가량. 그렇게 뜸을 떴다.

86년 늦은 봄 어느 날, 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셔 신문사 근처 서울다방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 나갔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시면 어디서들 알고 오는지 주위에는 늘 5~10명의 수행인이 있게 마련이다.

지하다방의 널찍한 자리에 둘러 앉아 아버지 이야기에 심취되어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나의 얼굴을 힐끔 쳐다 본 아버지는 대뜸 이렇게 이야기 하신다.

“허허, 이놈이 이제 살았구나. 꼭 죽을 놈이었는데… 약쑥이 묘하긴 묘한 것이야. 이번 원고에는 인공장수법(人工長壽法)을 써서 세상에 알리려무나.

서른 살에 요절할 사람에게 25살부터 5년 간 중완, 단전에 쑥뜸을 5분 이상 타는 것 200장씩 1000장 만 뜨면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옮긴 글 <민의약> 89년 10월호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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